암자소개

불교 개혁가… 항일 운동가… 유불선 통달한 석학
박한영스님 열반 61주기… 선운사서 재조명 학술세미나

석전(石顚) 영호 스님은 속명인 박한영(1870∼1948)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우리 불교계의 대강백이자 선승이기 이전에 유불선에 통달한
석학으로 구한말 지식인 사회를 이끌었던 때문이다.
해방 후 조선불교 중앙총무원회 제1대 교정(종정)을 지냈고,
1919년 한성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기도 한 항일운동가였다.
또 일제가 우리 불교를 일본화하려는 것에 맞서 불교 개혁을
주창하고 나선 운동가였다.

석전 스님의 강맥은 운허 스님에게 전해지며 현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을 비롯한 한국 불교의 학승 대부분으로 이어질 만큼
큰 줄기를 형성했다.
석전 스님이 재가 불자는 물론 당대의 문사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1926년 서울 안암동 개운사
대원암에 개설한 불교전문강원에서 신석정, 서정주, 이광수,
조지훈, 김달진 등을 지도했다.

특히 광주학생 항일운동으로 서울중앙고보와 고창고보에서 퇴학당하고 방황하던 미당을 중앙불교 전문학교 제자로 불러들였다. 이처럼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하다.
미당은 석전을 “내 뼈와 살을 데워준 스승”이라고 부르며 평생 그 은혜를 갚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석전이 남긴 한시 3000여수 중 육당 최남선이 420편을 골라 ‘석전시초’를 묶었고, 미당이 이 중 130여수를 직접 한글로 번역해 간직했던 원고가 2006년 공개되기도 했다.
당대 최고 엘리트였던 최남선은 “나는 누구에게도 물어볼 것이 없는데, 석전 선생에게는 물어볼 것이 있다”고 했다.

‘석전’이란 호도 추사 김정희가 선운사 백파 큰스님에게 우정의 표시로 내린 것. 추사의 문기(文氣)가 가득한 호의 주인은 백파 문중의 7대를 내려와서야 주인을 만난 셈이다.
이런 연유로 그가 승적을 뒀던 전북 고창 선운사에서 석전 스님의 열반 61주기를 맞아 그를 재조명하는 학술 세미나 ‘석전 영호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이 20일 열린다.

석전은 한국 근대 불교의 태두이자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선맥을 중시하는 한국불교의 풍토, 백파에서 비롯되는 선운사 문중의 세가 비교적 약했던 탓이다.
‘석전 박한영의 불교사상과 그 유신운동’(노권용 원광대 교수), ‘석전의 계율사상’(효탄 스님), ‘박한영의 항일운동’(오경후 한국불교선리연구원 선임연구원), ‘석전의 문학관’(김상일 동국대 교수)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 밖에 ‘석전의 선사상과 선종사적 배경 고찰’(김호귀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에 대한 연구가 있다.
한국불교 근세 3대 강백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석전은 유교의 경사자집과 노장 학설에도 밝았고 한시와 서법에도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다.

최남선이 정리한 ‘석전시초(石顚詩초)’와 ‘석전문초(石顚文초) 등 9권의 책에 시, 논설, 수필 500여편도 남아 있다.
19일부터 11월 22일까지 선운사 경내 박물관에서 열리는 ‘석전 영호대종사 유묵(遺墨) 특별전’에는 스님의 글씨를 비롯해 가람 이병기 등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최남선이 석전 회갑에 쓴 축시, ‘석전시초’ 육필원고, 제자인 운기 스님에게 내린 전강게(傳講偈·문중의 제자로 인정한다는 글) 유묵 등 50여점이 전시된다.

이외에도 선운사 측은 스님의 행장과 어록을 출간했고, 석전문학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윤재웅 동국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석전과 문인들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상호텍스트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렇게 볼 때 선운사는 오늘날 한국 불교는 물론 근대 문학의 큰 줄기가 비롯된 탯자리”라면서 “이번 세미나는 종교를 떠나 구한말 최고의 지성인을 불러내는 작업”이라고 평가했다.